구스타프 클림트의 생애
사실 구스타프 클림트는 본인의 사생활에 대해서 일생동안 좀처럼 말을 하지 않았고, 그의 사생활은 여태껏 밝혀지지 않은 부분들이 많습니다. 그나마 밝혀진 내용들도 사실 여부는 명확하지 않은 내용이 많다고 합니다. 구스타프 클림트는 1862년 7월 14일 오스트리아 빈 교외의 바움가르텐이라는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금 세공업자인 아버지와 오페라 가수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7명의 자녀 중 둘째로 태어났습니다. 클림트는 다복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1873년 경제위기가 닥치게 되고 그의 아버지의 사업이 기울게 되면서 매우 궁핍한 생활을 하게 됩니다.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14살이 되던 해 다니던 학교마저 그만두었습니다.
하지만, 금 세공사이자 조각가였던 아버지의 예술적 감각을 그대로 물려받은 클림트는 우연한 사건을 통해 그의 천부적인 재능을 발휘하게 됩니다. 학교를 그만둔 후 담벼락에 당시의 정치 현실을 비난하는 그림을 그리던 클림트는 경찰에 연행되게 됩니다. 하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그의 그림에 대한 재능을 인정받게 되었고, 1976년이 되던 해에 친척의 도움으로 비엔나의 국립 응용미술 학교에서 정식 미술을 배울 수 있게 되었고, 본격적으로 화가로서의 길에 들어서게 됩니다. 미술학교에서 클림트는 당시 유명했던 수많은 화가의 주목을 받게 되었고, 학생 신분일 때에도 다양한 장식 주문을 받았을 정도로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습니다.
1888년에 학교를 졸업한 구스타프 클림트는 함께 미술 공부를 한 동생 에른스트 클림트와 친구인 프란츠 마치와 함께 미술 공방을 차리게 됩니다. 이 공방에서 세 사람이 만들어낸 첫 작품은 신축 부르크 극장의 장식화였습니다. 빈 시의원회로부터 의뢰받아 제작된 이 작품에서, 클림트는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을 관람하고 있는 관객석의 모습을 과슈로 그려냈습니다. 무대 위의 연극을 관객들이 한껏 몰입하여 관람하고 있는 모습을 매우 전통적이고 사실적으로 그려냈습니다. 그림의 왼쪽에는 수의를 입고 죽어있는 줄리엣과 줄리엣의 사망 소식을 듣고 달려와 음독자살을 하려는 로미오의 모습을 그려 넣었습니다. 절정에 달한 극과 그 극에 몰입한 관객들의 모습을 통해 당시 극장의 현장감을 그대로 담아냈습니다. 이 시기에 빈에서는 사실적이고 아름답게 표현된 작품들이 인기를 끌었고, 성공할 수 있는 조건이었습니다. 이 작품은 우리가 알고 있는 클림트의 화풍은 아니지만, 상업적으로 의뢰받은 그림이기 때문에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보입니다. 어쨌든 이 작품을 통해 구스타프 클림트는 황제로부터 황금공로십자 훈장을 받아 오스트리아의 유명 화가로서 이름을 떨치게 됩니다.
이렇듯 커리어의 시작부터 승승가도를 달리는 듯 보였던 클림트에게 1892년 위기가 찾아옵니다. 클림트의 아버지가 사망하고, 연이어 동생이자 동업자였던 에른스트 클림트가 독감으로 인한 병으로 사망하게 됩니다. 사랑했던 두 사람을 한 번에 잃게 된 구스타프 클림트는 그 슬픔으로 인해 3년 동안이나 창작의 위기를 겪었습니다. 그는 잠시 세상과 멀어져 두문불출하였고 작품활동도 중단하였습니다. 3년 동안 많은 생각을 한 그는 돌아왔을 때, 시대가 원하는 그림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그림을 그리기로 결심합니다. 그 후 그의 작품은 사실적이고 전통적인 표현보다는 본인만의 화풍을 찾아갑니다.
빈 분리파와 Nuda Veritas
빈 분리파는 클림트가 주축이 되어 오스트리아 빈에서 1897년에 결성된 예술가 집단입니다. 빈 분리파 혹은 비엔나 분리파로도 불리며, 과거의 전통적인 양식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표현을 목표로 한 미술가들이 자신들의 전람회를 조직하기 위해 신설한 예술가 집단입니다. 그들은 폐쇄적인 빈 미술계를 극복하고, 각 시대에 맞는 예술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빈 분리파를 창설하면서 클림트가 마치 그의 선언처럼 선보인 작품이 Nuda Veritas 입니다. 1899년에 그려진 이 작품은 이전에 사용되지 않았던 세로로 긴, 파격적인 비례의 캔버스 위에 노골적인 여성 모델의 누드화입니다. 여성을 아름답게만 그려냈던 전통적인 화풍과는 다르게, 노골적이고 사실적으로 그려낸 여성의 누드는 당시에 커다란 비난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습니다.
구릿빛의 두껍고 화려한 장식 프레임을 배경으로, Veritas 즉 진실을 상징하는 벌거벗고 정면을 바라보는 여인의 형상이 그려져 있습니다. 희다 못해 푸르게까지 보이는 그녀의 창백한 피부와 붉고 풍성한 머리카락의 대조가 시선을 잡습니다. 또한 그녀가 오른손에 들고 있는 거울은 관객을 향하고 있어 흥미를 자극합니다. 그리고 그림의 상단에는 독일 시인의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당신의 행위와 예술이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다면, 소수를 만족시켜라. 다수를 만족시키는 것은 대단히 힘든 일이다." 이 시구에 구스타프 클림트가 이 그림을 통해 전달하고자 했던 모든 의미가 담겨있는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클림트 화풍의 시작점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사실적인 표현과 모호하고 추상적인 배경의 표현, 황동 느낌의 과감한 장식적 표현 등 이 작품에 담긴 다양한 특징들이 클림트 화풍의 핵심 요소들이 됩니다.
클림트의 작품 특징
구스타프 클림트는 금 세공사였던 아버지와 당시 유럽에서 유행하던 아르누보의 영향으로, 금색과 곡선을 주로 사용해 화려함을 뽐내는 작품들을 많이 남겼습니다. 그는 황금빛 화가로도 불리며, 그의 작품은 신화적이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가장 큰 특징으로 하고 있습니다. 또한 아버지의 영향인지 작품에 금박 장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찬란한 색감을 보이는데, 그의 대표작인 유디트나 키스에서도 이러한 특징이 명확하게 보입니다. 금가루와 얇게 편 금장식을 통해 화려한 문양을 표현한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를 황금 장식 기법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