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와 조세핀
에드워드 호퍼는 1882년 미국 뉴욕의 작은 도시에서 태어난 화가입니다. 그는 미국으로 이주한 네덜란드 출신의 부모님 아래에서 꽤 넉넉하고 가정적인 환경에서 좋은 보살핌을 받으며 구김살 없이 성장했습니다. 부모는 아들의 예술성을 전폭적으로 지지했고, 그 덕에 에드워드는 미술을 전공하며 화가로서의 본인의 꿈을 차근차근 이뤄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생각만큼 그의 커리어가 성공적으로 풀리진 않았습니다. 대학 졸업 후에는 광고회사에 취직하여 일러스트레이터로서 일하며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그 와중에도 화가로서의 꿈을 잃지 않고 지속해서 작품을 그리곤 했지만 딱히 큰 성과는 없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답답한 일상을 살던 호퍼는 같은 대학의 후배였던 조세핀과 결혼하게 됩니다. 대학 시절부터 둘은 친하게 지내왔는데, 정작 연인관계로 발전하고 결혼하게 된 건 40살 무렵이었습니다. 1년간의 교제 끝에 둘은 결혼에 성공하게 됩니다. 두 사람의 성향은 매우 달랐다고 합니다. 에드워드는 내성적이고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던 것에 반해 조세핀은 사교적이고 외향적인 타입이었습니다. 또한 시골 출신의 고지식한 사고방식을 가졌던 에드워드와 달리 조세핀은 진취적인 여성이었습니다. 둘의 성향이 너무 달라 어떻게 보면 불행한 결혼 생활을 했다고 보여지지만, 희한하게도 둘의 결혼 생활이 호퍼의 화가로서의 인생을 꽃피우게 한 촉진제 역할을 하게 됩니다. 결혼 후, 조세핀은 아내로서 모델로서 또 비서로서 에드워드의 화가로서의 삶을 전폭적으로 돕기 시작합니다.
가정폭력 가해자로서의 에드워드 호퍼
현대인의 고독과 애수 등의 감정을 잘 포착해 화폭에 표현하며 작가로서 명성을 얻은 그였지만, 정작 본인 가정에 드리운 고독과 슬픔은 외면했습니다. 그는 자기의 아내였던 조세핀 호퍼의 헌신적인 내조와 희생을 매우 당연하게 여기며 본인의 작품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유지했습니다. 에드워드 호퍼는 평생동안 자신의 아내인 조세핀 호퍼만을 여자 모델로 써왔습니다. 그 사실 자체로는 매우 로맨틱하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실상은 조세핀에게는 에드워드를 위한 희생과 헌신, 성실한 모델로서의 역할을 강요받아온 가정 폭력의 단편이었을 뿐입니다.
뉴욕예술학교를 졸업한 조세핀 역시 결혼 전에는 호퍼 못지않게 주목받는 예술가였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커리어는 에드워드 호퍼와 결혼하면서 끝나게 되었습니다. 호퍼는 아내를 학대했으며, 그녀의 작품을 깎아내리며 그녀가 자신을 내조하는 전통적인 아내 역할만 수행하기를 강요했습니다. 또한 육체적인 폭력까지 가했습니다. 조세핀은 겨우 155kg, 45kg의 작은 체구를 가진 여성이었고, 에드워드는 키가 2m에 달하는 거구의 사내였습니다.
이러한 에드워드의 가정폭력에도 조세핀은 평생 그의 곁에 남습니다. 그녀가 남긴 편지나 일기를 보면 남편의 폭력과 조롱을 합리화하는 그녀의 심리상태를 엿볼 수 있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당하고 있는 가정 폭력을 스스로 별일 아닌 것으로 치부시키기도 하고, 남편의 폭력을 적극적으로 합리화 시키며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심지어 그와 그의 작품에 대한 사랑과 존경의 감정까지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제삼자의 관점에서는 이해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결혼 후 평생을 에드워드의 의지대로만 살아온 그녀이기에 남편의 폭력 자체도 당연하게 여기며 이해하는 스톡홀름 증후군에 빠져있었던 듯 보입니다.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 특징
그의 작품은 다른 예술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줄 정도로 독특한 화폭을 보여줍니다. 그의 작품세계에는 몇 가지 특징이 존재합니다. 첫 번째로 그의 작품은 영화나 문학 등 다른 예술 장르에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는 굉장한 영화, 독서광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화폭에 옮기곤 했다고 합니다. 그는 부인인 조세핀과 영화나 책 등을 감상하고 토론하며 의견을 나누는 것을 즐겼다고 합니다. 특히 그는 누아르 장르를 좋아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어두운 설정과 복잡한 줄거리 등에서 큰 영감을 받았고, 영화의 날카로운 앵글이나 잘린 구도들을 사용하여 누아르 장르에서 받은 영감을 그림 위로 옮겼습니다.
두 번째로 그는 미국의 풍경에 푹 빠져있었습니다. 미국 뉴욕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어릴 때부터 자연의 아름다움을 관찰하고 연구하는 것을 좋아했으며, 빛과 풍경을 관찰하는 것에 푹 빠져있었습니다. 이러한 그의 성향은 그의 화폭에도 그대로 반영되었습니다. 그는 자연광과 인공광을 자유자재로 표현하며, 빛을 통해 그림의 분위기를 조절할 줄 아는 엄청난 재능을 지닌 화가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사람의 고독이나 슬픔 등 인간의 심리상태에 대해 심취해있었습니다. 그는 미국의 풍경을 묘사하는 풍경 화가인 동시에, 초상화를 잘 그리는 작가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영화관이나 식당 등 공공장소에 있는 낯선 사람들을 관찰하고 세밀한 심리를 표현하는 작품들을 많이 남겼습니다.
전시 소개
에드워드 호퍼의 국내 첫 단독 전시인 '길 위에서'가 서소문 서울 시립미술관에서 23년 4월 20일부터 8월 20일까지 열린다고 합니다.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을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미국 휘트니 미술관과 서울 시립미술관이 공동 기획한 전시입니다. 이번 전시는 에드워드 호퍼의 국내 첫 한국 개인전으로 굉장한 규모로 진행된다고 하니 큰 기대가 됩니다. 이미 개막 전 얼리버드 티켓으로 13만 장이 팔렸다고 하니, 한 번 방문해서 관람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